2020. 10. 17. 13:19ㆍ카테고리 없음
2003
여행기간 : 42일
항공편 : 대한항공. 에어인디아
경로 : 뉴델리. 아그라. 바라나시. 카주라호. 오르차. 자이뿌르. 조드뿌르. 푸쉬카르. 마운트아부. 우다이뿌르. 자이살메르. 푸네. 아잔타 엘로라. 고아. 뭄바이
아주아주 오래전 여행기.
ㅋㅋㅋㅋ왜 어쩌다 어째서 이렇게 터프한 여행지로 나를 내던졌는가. 2003년의 인디아가 없었으면 여행병에 시달리며 살지 않았을것 같기도 하다. 아님 좀 편안하고 평범하게 리조트와 휴양지를 다녔을지도...
오밤중에 도착한 델리의 빠하르간지는 그냥 더러운 폐허일 뿐이었고 그 날은 대혼란이었음. 빨리 도망가고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니 또 몰라보게 활기 넘치는(그러나 여전히 지저분한) 곳으로 역변하는 바람에 정붙일 데가 새록새록 생긴다. 크고 새빨간 석류를 바로 짜서 만들어주는 몇백원도 안되는 석류주스 같은 것들. 대충 적응되어가는가 하다가 우리랑은 너무 다른 인도인들 때문에 매일 그로기가 되어 숙소에 돌아오는 날들....

아그라 갈 때 처음 탔던 기차. 백팩커들이 주로 타는 세컨 슬리퍼(3단 침대칸)가 생각보다 너무 험블해서 다른 여행자들은 다들 어떻게 타고 다니는건지 진심 신기했다.


그러나 바라나시 가는 기차는 뭐가 잘못됐던 건지 타고보니 입석..... (LCC가 없던 시절). 12시간 구간을 입석으로 타면 쓰레기창고 같아 보이던 세컨슬리퍼가 호텔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가 아파서 바닥에 신문이라도 깔고 싶을 때 쯤에 착한 인도인 가족이 자리를 줘서 앉았다. 우리땜에 중간 침대를 펴지 못하고 그 가족도 밤새 앉아서 가서 정말 미안했는데도, 차마 일어서지는 못했다. 정말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첨에 우리 일행이 그 집 아기랑 과자를 (별생각없이) 나눠먹었는데 아마도 그것때문에 호의를 베푼걸지도.
바라나시. 멋지고 신비롭고 기이하고 더럽다.
가보지 않고서는 상상할수 없을 것이다. 가봤어도 제대로 표현할수 없지만.
힌두교도들은 죽음을 맞는 장소로 바라나시 갠지스강에 모여든다(고 한다). 강변의 화장장에는 매일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하루걸러 뿌자(제례의식 같은것)도 있다. 그 밝고 노란 불빛이 장례식인지 축제인제 모를 미묘한 기억. 낮에는 어김없이 강물이 성수인양 몸을 적시는 사람들. 극도의 이질감.
좁고 길고 복잡한 골목은 구글맵이 없던 시절 최고난이도의 현실 미로였는데, 골목에서 소를 만나면 두근두근..... 소 꼬리에 안맞고 지나가려면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소 옆을 뛰어야 하기 때문에(소꼬리에 맞으면 10년 썩은 오줌냄새가 난다는게 정설이었다)..... 숙소 루프탑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갠지스 강의 전경이 낯설고 멋지지만 루프탑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숭이들이 있기 때문에 3분 정도만 가능하다. 거의 매일 갠지스의 노을을 덮어쓰고 보트를 타는 일. (골목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보트를 타는게 편하다) 하루 수십번 정전이 되고, 고막터지게 시끄러운 발전기 소리도 수십번 듣는다.


카주라호는 그 유명한 카마수트라 사원들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 비옥해보이는 농지가 좋았다(?). 무엇보다 숙소가 넓고 시원한 옛날저택에, 잘 가꾼 넓은 정원이 있어서 간만에 제대로 쉴수 있었다.


오르차는 교통이 정말 불편했던 시골이었고 그때 당시엔 그 멋있는 성들과 강과 풍경(+독수리들 포함)들이 거의 자원화되지 않고 그냥 방치되고 있는 수준. 그래서 여행 인프라가 열악.... 숙소와 식당이 제대로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지금은 달라졌을까.



자이푸르, 조드푸르 같은 대도시에서는 소음과 나쁜 공기와 복잡함 때문에 쉽게 지쳐서 매번 빠르게 탈출. 하와마할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메헤랑가르 성은 웅장하긴 했었는데, 체력이 바닥나서 감흥이 없었다.
푸쉬카르. 다시 조용한 시골. 긴 여행 중에 호숫가의 가트에 앉아 멍때리는 시간이 최고. 도시 전체가 채식을 하는데(힌두교 성지라서) 신기하게 채식 음식이 다 맛있었다. 시장에서 사먹었던 채식햄버거가 먹었던 것들 중에 탑3에 들 정도.
여기 어디서부터 사막이라 낙타들이 간간이 보인다.

자이살메르. 압도적인 황금빛 사막도시. 중남부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꽂으라면 아마도 자이살메르. 그리고 자이살메르 성. 성안에 사람이 살고 숙소와 식당도 있다. 그리고 자이살메르에 온 여행자라면 누구나 다하는 낙타사파리가 돌이켜생각해보면 후덜덜했다. 모든 것이 처음. 낙타는 처음엔 커서 놀랐고, 또 너무 순하고 사람을 잘따라서 놀랐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겹겹이 굽이치는 샌드둔의 곡선들이 넘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모래 위에서 비박. 자다가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워서 깼는데 머리위에 천만개의 눈을 가졌다는 밤하늘이..... 그렇게 별이 크고 많고 예쁜걸 처음 알았던 밤이었는데, 와 그래도 정말 너무 춥기는 했다.



Mt.Abu. 마운트아부는 산간휴양지 같은 곳이라 널널히 재충전하기에 좋았다. 짧은 트레킹을 하고 낮잠 자다가 새소리와 동네 아이들 노는 소리에 깨는 꿀맛. 그렇게 좋아했던 마운트아부 사진은 왜 한장도 남아있지 않은가. ㅋ
우다이푸르는 호수와 하얀 성이 많아서 굉장히 독특했고 여행자거리는 아기자기했다. 백패커들이 좋아할만한 곳이라 장기체류하는 사람도 좀 있다. 이곳 핫플은 마리화나 플레이스
아메다바드나 뿌네 같은 대도시는 역시 기억이 잘 안난다. 도착하자마자 떠날 궁리만 했기 때문에.
남쪽으로 이동할수록 더워져서 아잔타 쯤에서는 12월초 새벽에도 전혀 춥지 않았던 것 같다.
아잔타 석굴. 교과서에 나오는 그곳(동굴 내부의 벽화는 너무 어두워서 잘 안보임). 그러나 엘로라가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고 조형적 완성도도 더 높은것 같은데?



고아에서는 특별히 한 것도 없이 마냥 늘어져 비치에 누워있었다. 인도에서 갔던 유일한 바다. 그러다가 결국 함피를 못갔다. Little Plantain Leaf 라는 로컬식당의 도사가 넘넘 맛있어서 서너번은 갔던 것 같은데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아직도 있다!!!
야간버스를 타고 마지막 도시 뭄바이로 이동. 끝이 안보이게 넓은 빈민가 구역, 충격적이었던 도비가트(빨래터)..... 뭄바이는 여러가지로 대단한 도시더라.
델리에서 시작했던 여행은 동쪽 끝 바라나시, 서쪽 끝 자이살메르, 남쪽 끝 고아를 찍고 뭄바이에서 끝났다. 북쪽 (라다크)는 무려 15년 후에 갔다.ㅋ
*인도는 나라 전체에 힌두교, 불교, 시크쿄, 자인교, 기독교의 사원과 역대 왕조들의 유적지들이 그냥 널려 있다. 게다가 힌두교는 수많은 신들마다 각자의 사원이나 모뉴먼트들이 있다. 코끼리신(가네쉬)을 제일 많이 마주치는것 같다.
**땅덩이가 커서 도시간 이동이 고생스러웠다. 그땐 LCC가 없을때라 국내선도 거의 없었고 도시간 이동이 매번 8-10시간, 주로 야간버스, 기차는 그나마 중북부에서만 가능. 새벽에 캄캄할때 떨어지면 춥고, 암것도 안보이고, 릭샤 기사들이 몰려들어서 멘붕.
***맛있었던 것들. 더울땐 무조건 라씨, 마운트아부 이름없는 식당의 비리야니, 푸쉬카르 시장의 채식버거, 고아 Plantain leaf의 도사, 아침에 기차에서 팔던 진한 짜이. 에어컨 나오던 인디안커피하우스의 공기.
****다시 인디아를 가게될지 알수 없지만(자신도 없지만) 또 가게 된다면 다음은 동북부(다즐링, 시킴, 메갈라야 쪽) 가보고 싶다.